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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사상자 유가족연대  공지사항 & 뉴스 - Notice & News


ㆍ작성자

군대인권

ㆍ작성일

2009년 9월 2일 수요일
ㆍ조회: 2528       
"김일병 힘내… 터널 끝에 빛이 보여"

장병들 마음의 병 24시간 어루만지는 '육군 생명의 전화'
누나·어머니 같은 민간 여성 상담관 4명 근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달았으면…"
 
생명의 전화 상담원입니다." "저기, 뭐 좀 물어봐도 됩니까?" "네, 뭐든지 물어보세요."

대개 이런 식이다. 허나 시작이 비슷하다고 그 안에 담긴 사연이 모두 같을 리 없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 목소리에서 고민을 끌어내는 것은 이제 상담원들의 몫이다.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잠시 기댈 어깨를 내주는, 사회 곳곳의 여느 상담센터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 발짝만 나서면 바삐 움직이는 수많은 군인들과 마주친다는 점만 빼면.

충남 계룡시 계룡대 내 육군본부에는, 청취율 낮은 라디오 방송의 허름한 스튜디오 같은 작은 방이 하나 있다. 육ㆍ해ㆍ공군 본부가 들어찬 계룡대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이 곳은 '육군 생명의 전화(ROKA Life Line)'다. 육군 내 자살 사고를 막기 위해 지난해 3월 생겼다. 민간 전문 상담관 4명이 돌아가며 24시간 운영하는데, 병사, 간부, 군무원 등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상담관 이정미(36)씨의 경험담. "병사 한 명이 휴가를 나왔다가 전화를 했는데, 부대에 복귀하고 싶지 않다는 거였어요." 두렵다는 그 병사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이씨는 병사를 진정시키며 차분한 대화를 통해 그의 신원과 위치 등 정보를 모아갔다.

실제로 그는 자살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 상담 전화는 익명 보장이 원칙이지만, 급박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군 수사당국의 협조를 얻어 추적 및 예방 조치를 취한다. 부대 지휘관과 연락이 닿은 병사는 다행히 마음을 고쳐 먹었다.

올해 2월 전문 상담관을 2명에서 4명으로 늘리고 시스템을 정비한 이후 6월까지 총 2,183건(하루 평균 16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자살 관련 상담은 179건, 그 중 긴급 사안 10건에 대해서는 조치를 취한 뒤 지속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

물론 대다수 상담은 자살과 거리가 있다. 그래도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다. 작은 병도 놔두면 큰 병이 된다. 상담관 전현영(44)씨는 "복무 부적응 문제가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20대 언저리에 처음 사회를 배우는 곳으로 군대를 선택한(또는 지정받은) 젊은이들이잖아요. 규율, 계급, 단체 생활, 크게 말하면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그밖에도 사연은 다양하다. 휴가 나와 성관계를 가졌다가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을까 고민하는 병사, 친구가 있는 사단으로 보내달라고 떼 쓰는 병사, 선임병과 다툰 뒤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못 잔다는 병사…. 상담관들은 때론 누나처럼, 어머니처럼 이들을 다독여준다.

전씨는 "여러 번 전화가 와 친해진 경우도 있다"며 "아무 말 하지 않는 '침묵 전화'도 가끔 오는데, 듣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용기를 주는 말을 건넨다"고 말했다.

육군은 장병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군 간부가 아닌 민간 여성을 상담관으로 채용했다. 한 달 간 군 기본 교육을 받고 투입됐지만 처음에는 실수도 많았다고 한다. "보직 전환을 바라는 운전병 전화를 받았는데 '불가능하다'고 답하고 끝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어찌나 미안하던지…."(이정미씨)

"상담 첫 날 상근(예비역) 전환이 될지 물어오는데, 겨우 계급이나 알던 때에 얼마나 당황했던지요. 다시 전화 달라고 부탁하고 공부했습니다."(전현영씨) 군대에서 자주 쓰는 '위수지역'이나 '격오지' 같은 용어에 익숙해지는 것도 일이었다.

잠시 웃음기가 돌던 사무실은 상담 전화가 울리면서 다시 진지해졌다. 육군 관계자는 올 들어 현재까지 40명의 장병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알려줬다. 52만 육군 중 해마다 60여명이 그 길을 간다. 상담관들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광고 카피 같은 흔한 느낌의 표현이지만, 힘든 이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말은 없다고 했다. 어두운 터널 끝엔 빛이 있기 마련이고,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 마음의 병을 상담으로 치료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며, 자신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단다.

육군의 적극적인 홍보활동 덕에 상담 건수는 올 2월 301건에서 6월 548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한국 생명의 전화'와 협약도 맺어 상호 협조를 통해 내실을 기할 수 있게 됐다.

육군 관계자는 "다행히 이 곳에서 상담을 한 장병 중 자살로 이어진 경우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무료전화(080-007-9191), 일반전화(042-550-6979), 군 전화(960-6979), 인터넷(www.army.mil.kr)으로 상담할 수 있다.

생명의 전화 사무실을 나오는 길에 복도 한 구석에서 작은 글씨로 적힌 문구가 눈에 띄었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다 버리고 다 잃고도 삽니다. 사람만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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