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아이디
비밀번호
회원등록   비번분실

 

운영자 이정호
☎ 010-2372-0479

 

 

 

국군사상자 유가족연대  안타까운 그들 - Casualty List


ㆍ작성일

2001년 5월 16일 수요일

ㆍ첨부파일

989991311.jpg (0KB) (Down:23)

ㆍ군별

육군

ㆍ계급

이병

ㆍ소속부대

22사단 신병교육대 4중대 (조교)

ㆍ사고일자

2001.03.07

ㆍ사고유형

사망

ㆍ심의결과

사상

ㆍ조회: 8167       
김영훈


● 출신학교 : 대구삼영초등, 침산중학교, 영진고, 대구대 사범대 수학교육과 1년 재학
● 군수사 결과 : 내성적 성격,부대 부적응,항상 긴장한 모습,말수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자살로 판정지으려 함.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 입대 한지 58일 만에 22사단 신병교육대 조교로 발탁되어 참관조교로 근무한지 13일 만에 조교 뱆지 달고 씩씩한 모습 보여준다던 아들이 의문의 시체가 되어 그것도 자살 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씌워 부모에게 돌려준 22사단장을 증오하면서 부모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한다.

사건개요

● 영훈이는 2001년 1월 9일 102보충대를 거쳐서 2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교육을 마치고 중대장(대위 라00)의 추천과 대대장(중령 박00)의 면담으로 교육생 245명중 처음 9명, 그 다음 6명,최종 3명을 뽑는 조교에 발탁되었다.

●부대 배치 후 13일만인 2001년 3월 7일 18시 30분부터 실시한 훈련병 들의 야간 경계 교육을 마치고 부대가 복귀한 21시 30분 경 훈련병 1,2,3,5,6소대가 차례대로 내부반으로 해산하기 위해 1소대가 먼저 해산 후 2소대 후미에서 참관 조교로 참석하고 부대에 복귀 한 영훈이를 며칠 전 다리를 다쳐 훈련에 참석 못하고 행정반에 남아있던 조교 일병 조00이 교육을 마치고 오는 병사들을 마중하기 위해 1층으로 내려옴.

●2층과 1층 계단의 중간지점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훈이에게 ‘수고했어’라고 말을 하니 영훈이가 ‘네.알겠습니다’ 하고는 3층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고 함.

●그 후 5분 뒤인 21시 35분경 누군가가 부대 막사 앞 5.4M부근에 피를 흘리며 머리를 막사쪽으로 두고 다리를 포개 반듯이 누워 있는 것을 훈련병 최00이 막사 안에도 화장실이 있으나 야간 훈련 후 나오는 컵라면을 빨리 먹기 위해 막사에서 20M가량 떨어진 야외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뛰어나오다 누군가 쓰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막사 안으로 다시 들어가 ‘여기 누가 쓰러져 있습니다’하고 소리치니 조교 상병 김00이 영훈이가 쓰려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훈련병 최봉준 외 다른 훈련병들과 같이 영훈이를 급히 의무실로 이동했다고함.

●의무실로 이동 후 다른 사병 한명이 사고현장에 떨어져있는 시계를 주워서 눌러보니 시계에 불이 들어오면서 시간은 21시 38분 이었다고함.

●한참 뒤 영훈이가 야전상의를 입고있지 않다는 말을 듣고 조교 상병 장00이 혹시 내무반에 옷이 있나 찾았으나 야전상의가 보이지 않아 며칠 전 훈이에게 세탁하라며 사준 세제가 생각나 세탁기 속을 보았으나 옷이 보이지 않아 빨래를 해서 건조대(겨울에는 사용하지 않는)에 널어 놓았나 하고 건조대가 있는 3층 창문을 열어보니 그곳에 옷은 없고 3층 옥상으로 향하는 철제 사다리 밑에 경광등 한 개가 보여 행정반에 가서 경광등이 몇 개 회수되었냐고 물어보니 경광등을 모으는 병사가 5개가 반출되었으나 4개만 회수 되었다고 하여 1개는 영훈이의 것으로 판단하고 다른 병사와 같이 옥상으로 올라가 랜턴을 이리저리 비쳐보니 옥상난간에 조교헬멧이 놓여있고 그 밑 옥상바닥에 탄띠,야광 엑스밴드,내피,야전상의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대로 두고 내려와 보고 하였다고 함.의문점

●오른쪽 귀 위에 상하로 약15cm가량의 찢어진 상처와 머리뼈가 보이도록 깊이 패인 흔적이 있었는데  머리가 그토록 깊은 상처를 입었으면 많은 피가 흘렀을 텐데 피의 흔적은 별로 없었다.또한,왼손 새끼손가락 분쇄 골절과 찢어짐 및 손등의 찰과로 인한 핏 자국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영훈이를 의무대로 옮긴 들 것에는 손의 피가 많이 흘러 있는 것을 수사자료 사진에서 보았는데 왜 현장에는 피를 흘린 흔적이 없는 것인가.

●수사관들의 말로는 영훈이가 3층에서 떨어지면서 한바퀴 회전을 하며 땅에 떨어졌고 땅에 떨어진 뒤에는 다시 굴렀다는데 영훈이가 추락한게 맞다는 전제하에 부검의가 추정하는 추락 장소와 영훈이가 발견된 장소와는 거리의 차이가 있으며 영훈이가 발견된 장소 외에서는 어떠한 곳에서도 핏자국을 발견하지 못했다.그리고 시계 유리조각(입대시 훈이는 시계가 없었는데 훈이에게 고참병이 시계를 주었다고 진술함)이 발견된 장소를 보면 영훈이가 떨어졌다면 얼굴 쪽으로 떨어졌어야 방향이 맞는데 얼굴에는 어느 곳이고 상처하나 없었다.

●사고직후 부대에서 전화 온 내용은 영훈이가 계단에서 떨어져서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했으며 유족측에 영훈이의 사고소식을 알려준 것도 사고 후 2시간이 지나서 였는데 왜 사고가 난 시점에서 2시간이나 지나서 사고소식을 알려준것인가?

●국군병원 응급실에서 사고 첫날 보여준 영훈이의 X레이 사진(10여장 이상)에는 골절은 아무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고 왼손 새끼손가락만 분쇄골절이 되어있다는 것만 군의관의 X레이 사진설명에서 들었는데 부검결과는 머리뼈에 금이 나있고 등뼈가 내려 않았다는데 어떻게 군 병원의 X레이 사진에는 그러한 골절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며 X레이 사진에 누구의 사진인지 이름도 없었는데 그 X레이 사진 자체도 영훈이의 것인지 의심스럽다.그리고 KBS속초방송국에서 기자가 X레이를 찍었냐는 물음에 22사단 헌병대에서는 왜 머리만 찍었다고 대답을 했을까?

●훈련병들과 간부들이 많은 신병 교육대에서 영훈이가 3층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는 병사가 상병 조00 1명뿐이며 조교내무반은 계단 반대편 2층 끝쪽인데 복장상태도 교육장에서 훈련병을 교육시킨 조교 복장 그대로였다는 훈이가 3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왜 상병 조00 이는 그냥 보고있었나..

●21:30분에 훈련병들이 부대에 복귀해서 각 내무반으로 입장하였다는데 영훈이는 1.2.3.5.6소대중에 2소대의 후미를 책임지고 있었다고 한다.1소대가 입장한 후 2소대가 입장한 시간은 21:30분이 넘었을 것이며 아직 3.5.6소대가 내무반에 입장하지 않았는데 그 훈련병들이 모두 내무반으로 들어가자면 시간이 21:35분은 넘었을 것인데 부대에서 말하는 대로라면 그때는 벌써 영훈이가 쓰러진 후의 시간이 된다.(참고로 훈이를 본 2층 계단부터 옥상현장까지는 약 2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그리고 영훈이 후미 3,5,6소대의 조교들은 내무반으로 입장하지 않고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했는데 21:30분에 교육복귀해서 훈이가 21:35분에 쓰러진 것이 목격되었다고 함.

●훈이의 야전상의를 찾으러 다닌 병사는 어떻게 영훈이가 그 짧은 시간(진술에 의하면 복귀 후와 발견된 시간의 차이는 5분 미만의 시간)에 빨래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헌병대에서 유족에게 보여준 사건 비디오에는 사병들의 중요진술 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사고당일 유족측에서 사병들의 목격자 진술과 그 외 유족들의 의문점에 대해 사병들이 답변한 내용 중에는 중요한 내용이 많은데 왜 그 자료들은 첨부하지 않고 편집 삭제를 하였나?

●현장재현도 유족이 한명도 참석치 않은 상태에서 저희들끼리 현장 재현하고 조작하고 은폐하고 이런 수사 내용을 유가족은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부모의 한

천추의 한을 품고 천지 멀리 낮선 곳에서 부모형제 그리며 외롭게 숨져간 우리 영훈이는 왜 무엇 때문에 군에서 희생시켜야만 했는지,사회에 있었으면 건강하게 살아있을 아이를…                            
사병들을 하나의 군수품으로 취급하고 사병이 죽음을 당해도 자기일 아니라고 진급에 영향이 미칠까봐 은폐 조작하는 몇몇 직업 군인들 때문에 영훈이의 진상 규명을 확실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외롭게 억울하게 희생당한 영훈이의 유골은 오늘도 강원도 어느 한 부대의 골짜기 초라한 봉안실에서 부모 형제를 그리며 울고 있을 것이다
故 이병 김영훈의 父 김상길 母 서정순은 다짐한다.아들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지는 그날까지 진상규명을 위해 생업도 전폐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위 사고와 관련하여 보거나 들은 사실을 저희 유가족 측에 알려 주실분은 대구 (053) 357-9858 번으로 연락주시고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서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 현재의 상황 :







   
윗글 주정욱
아래글 김문환

※이름을 클릭하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No 이름 군별 계급 소속부대 사고일자 사고유형 심의결과 조회
18 이규완 육군 상사 육군 제 50사단 12연대 1973.09.15 사망 사상 10329
17 이승원 육군 일병 육군 제 5사단 27연대 12중대 3소.. 1998.12.01 사망 사상 6374
16 양세혁 육군 하사 육군 제 36사단 포병연대 55대대.. 1996.08.18 부상 기타 6141
15 유장현 육군 이병 9사단 29연대 3대대 9중대 (백마.. 2001.07.11 사망 기타 6513
14 박종규 육군 이병 계룡대근무지원단 육군지원부 지.. 2001.07.29 사망 기타 6510
13 성락형 육군 상병 육군 제26사단 73연대 2대대 5중.. 1979.07.13 사망 사상 6080
12 송상훈 육군 이병 청평국군부대 2001.05.19 사망 기타 6344
11 곽형근 의경 이경 용산경찰서 방범 순찰대 본부소대.. 2001.06.17 사망 기타 6191
10 이재찬 육군 이병 육군제37사 111연대 2대대 본부중.. 2001.02.16 사망 기타 8125
9 서민교 전경 이경 경북 울릉도 경찰서 (상황실 근무.. 1989.10.27 사망 기타 6041
8 이경열 해병대 일병 해병 2사단 5연대 51대대 2중대 2000.07.20 사망 기타 7486
7 한근수 육군 이병 11여단 61통신 가설중대 1999.01.05 사망 사상 6084
6 주정욱 육군 이병 22사단 53연대 1대대 3중대 반암.. 2001.03.06 사망 기타 13711
5 김영훈 육군 이병 22사단 신병교육대 4중대 (조교).. 2001.03.07 사망 사상 8167
4 김문환 육군 일병 육군 제12사단 37연대 1대대 2001.03.14 사망 기타 7415
12345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