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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사상자 유가족연대  안타까운 그들 - Casualty List


ㆍ작성일

2005년 7월 3일 일요일

ㆍ군별

육군

ㆍ계급

일병

ㆍ소속부대

72사단 5181부대(올림픽부대)

ㆍ사고일자

2005.6.11

ㆍ사고유형

사망

ㆍ심의결과

기타

ㆍ조회: 6119       
라형일

● 출신학교 : 조선대학교
● 군수사 결과 : 수사중
● 유가족 의견 :
휴가를 나올때 마다 항상 동생과 친구들에게
선임병들과 상병들의 갈굼 때문에 괴롭다고 함
백일 휴가 당시 허리에 화상자국이 있었지만
웃으며 얼버무리기에 별일 아닌지 알고 넘어갔음..
첫번째 휴가 나올당시 영창에 갔다옴
영창 이유를 묻자 "수하 미실시, 경계근무 태만" 이라고 함.
최전선도 아닌데 , 수하 미실시 했다는 것 만으로 영창에 갈만한 사유가 되는가 ?
그리하여 몇일이 지나 집에 휴가 4박5일로 나왔을당시에 많이 우울한 기색이 보이고
본인도 자꾸 군생활이 힘들고 선임병들이 갈궈서 힘들다고 하기에
가족들은 원래 군생활은 그런것이라고 다독여 줌.
그래도 우울한 모습을 보였음
그리고 복귀 당시 오후 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어 부모님이 집으로오자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음.
우울한 모습이었고 부모님이 직접 서울 부대까지 데려다 줌
( 저희는 전라북도에 살고 있습니다..서울까지는 3시간 이 넘게 걸리고 거기에 의정부
까지 가면 거의 한 두시간이 더 소요 됩니다.)
그날 저녁 변기뒤에서 식칼과 주방에 떨어진 핏자국을 발견하고 가족들은 아연실색
하여 바로 군부대에 전화하여 이 사실을 알리고 지대한 관심과 문제점들을 수색하여 달라 요청하였음.
(하지만 이 영창에 갔다 온 후로 100일 휴가때만 해도 씩씩하였던 아이의 얼굴이 웃고는 있으나 항상 우울한 기색을 띄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영창을 혼자 간것이 아니라 상병과 함꼐 갔기 때문에 이 상병의 주도하에 어쩌면 괴롭힘을 당했을껏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우리 아이가 이 영창.. 그 수하 미실시 라는 말도 안되는 가벼운 이유로 갔다 온 후로 이상한 행동들 , 손목을 긋는 등의...이 나타 났으므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문제가 발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의 다음 카페 등의 클럽에 세상을 살기 힘ㅈ든 사람들의 넋두리를 하는 카페가 두개가 잇었는데. . 가입일이 모두 영창을 갔다 온 첫 휴가때 가입이 되어있어 우리는 이것이 정말로 원인이 되었을껏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두번째 휴가..
이러한 참변이 일어난 휴가를 나왔을때도 가족들에겐 그러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동생한테만 힘들다는 말을 하였음.. 항시 웃고 있었고..
복귓날 참변이 일어나기 몇시간전에 휴가를 나오는 친구와 만나 횟집을가 회를 먹고 즐겁게 보냈다며 가족들에게 일일이 전화하여 다음휴가때 또 잘 나오겟다며 웃으며 전화하였음.그러나 그후 몇시간 후 군으로부터 미복귀 전화를 받았고 몇일간 수시로 군 전화에 성심성의껏 대답을 하였으며.
6월12일 오후 3시경 한강 남부에서 모래를 채취하는 사람들로 부터 사체가 발견 됐다는 연락을 관리원 으로부터 받아 그 걸음으로 쭉 서울로 올라가 영안실에서 사체를 확인 했는데..3살때 입은 화상자국이 왼손에 남아있는것이 확인돼 다음날 바로 장례를 치르게 되었음..

소극적인 면이 있어 쉽게 남에게 자기 마음을 털어 놓지 못하고 항상 자기 혼자 책임지고 가려는 면이 있는 아이라 분명 친구들과 동생들에게 매번 군생활이 힘들고 상병들의 언어 폭력에 의한 것들이 아이에게 그러한 선택을 불러 일으켰을꺼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확실한 수사를 대대장과 군관계자에게 여러차례 부탁을 하였지만 그들은 고인 앞에서도 웃고 떠들며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런일은 모두에게 있는 거라는 말만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곤  다음날 오후 늦게 친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화장을 하려 했는데 갑자기 새벽으로 시간을 바꾸며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지으려는 기색이 보여 우리 유족들은 정말 분개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안실 그 차가운 곳에 누워 있을 아들이 너무도 마음에 걸리고 불쌍하여 우리는 그저 빨리  편하게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하여 화장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군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앞에 놓인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유족들이 납골당에 사인을 하고 와 보니 남은 것이라곤 아들의 위패와 사진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이없고 황당하여 말을 못하였는데 너무 화가난 막내 딸이 군관계자들과 관리인에게 이게 무슨짓이냐며 당신들이 사람이냐며 오열을 하며 화를 내자 그들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는 서로에게 잘못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마지막까지 아들의 옆을 지킬 권리마저 박탈당한채 그렇게 멍하니 눈물만 흘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자식들을 가진 인간이라면 그래선 안되는것이 아니겟습니까..
우리들은 그들을 용서 할수 없습니다.
22살이 먹도록 담배 한번 안피고 부모속 안썩이며 어려운 형편에 장학금까지 받고 다니는 군휴가를 내고서는 일년동안 엄마 아빠 가게를 도와주던 귀한 아들이였습니다..착하고 성실하던 여리던 아들을 나라는 아무런 죄책감없이 데려간 주제에 마지막까지 우리를 이렇게 슬프게 할수 있는것입니까..
상병들의 언어폭력과 이해할수 없는 영창입건으로 인해 그런것이니
영창에 가게된 자세한 원인과 상병들의 언어폭력 사실과 영창을 나온후에 같이 입건한
상병에 의한 군에서의 따돌림등을 수사 의뢰하였으나.. 똑같은 말만 할뿐이였습니다..
그들을 용서할수 없습니다..

● 현재의 상황 :
현재 수사중이며 자세한 것들은 나중에 택배로 보내주겠다는 말만 하였음.
아직 부검 결과외에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였고.
군으로부터 받은 아들의 이해하지 못할 반성문과 면접기록서의 우리 형일이의 사망사고 후에 고친듯한 흔적들이 적나라하게 써있어 대대장에게 항의를 하니 그는 " 제가 그 자리에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라는 말만 늘어놓고 대답을 회피하였음.
청와대 신문고 란에 사연을 적어 냈으나 .. 말은 똑갔았음..
수방서에 진술서를 썼으나 후에 사건에 대해 연락을 준다던 그들도 연락이 없음.
장례식비는 군에서 부담하였고
500만원을 보내준다 하였음..그러나 아직 입금이 되지 아니하였고
몇일전 상병들의 언어폭력에 의해 죽게되는 군인들에게 나라가 부담한다는 말을
듣게됨..


이러한 아픔을 같이 안고 있는 여러분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고
많은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nerozzang@naver.com  메일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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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이름 군별 계급 소속부대 사고일자 사고유형 심의결과 조회
78 지용수 육군 이병 증평탄약 모부대 1986.12.10 사망 기타 5541
77 라형일 육군 일병 72사단 5181부대(올림픽부대) 2005.6.11 사망 기타 6119
76 노정석 해병대 이병 2사단포1대대3중대 2005.05.01 사망 기타 7217
75 장완호 육군 병장 보병제28사단 2004.11 사망 사상 6115
74 이가람 공군 일병 방포여단 2004.08. 사망 기타 5175
73 임주백 육군 상병 보병제8사단 2004.01.11 사망 공상 5515
72 고정현 육군 일병 보병제2사단 2004.12.30 사망 기타 4698
71 박상선 육군 이병 보병제52사단 2004.12.30 사망 기타 4493
70 김진범 육군 이병 제2군단2포병여단92포병대대본부.. 2004.5.24 사망 기타 5716
69 서유성 육군 이병 제5보병사단 196포병대대 2포대 2004.7.6 사망 기타 5586
68 여동호 육군 상병 1공수여단 1970. 12. 사망 기타 5793
67 신동기 해군 일병 해군 제2함대사령부 제천함 2004.07.11 사망 사상 4572
66 한중열 육군 이병 강원도 춘천시 7882부대 5포병여.. 2004.07.02 사망 기타 5998
65 오기원 육군 이병 6관구 사령부 1972. 01 사망 기타 4702
64 이무수 육군 중위 제 31사단 2004. 05 사망 사상 5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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