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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사상자 유가족연대  안타까운 그들 - Casualty List


ㆍ작성일

2001년 3월 29일 목요일

ㆍ첨부파일

985871348.jpg (0KB) (Down:78)

ㆍ군별

육군

ㆍ계급

소위

ㆍ소속부대

제8사단 10연대 3대대 9중대 2소대 (소대장)

ㆍ사고일자

1999/12/04

ㆍ사고유형

사망

ㆍ심의결과

사상

ㆍ조회: 11460       
윤광열


출신학교 : 방동초등학교, 기린중학교, 기린고등학교, 안동대학교, 제3사관학교

● 군수사 결과 : 수사 발표 내용

*개요
부대전입 4일차인 윤광열소위는 99년 12월 4일날 08:15분경 출근 했다는 지적을 받고, 2소대 내부 BDQ에서 환복과 세면을 한후에 9시 15분경 내무실에 도착해서 내무검사중인 부소대장 하사에게 내무실 통로 바닥에 쌓여져있는 폐의류를 보고 이게뭐요라는 질문에, 부소대장이 인사도 없이 ,통로에 걸터 앉은 자세에서 쳐다보지도 않고 턱으로 가리키며 총기 수입포로 사용할꺼요라는 답면을 하자 아무말없이 밖으로 나간후에 금일 16시 16분경보일러실에서 변사

*사고장소 현장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겠다.
사고 장소는 유가족들이 여러차례 보신거와 같이 BOQ건물 좌측지하에 위치하고, 보일러실은 가로 2.6m,세로 4.2m, 높이2.6m로서 입구 우전방에 좊이 약 1.34m의 보일러가 위치하고 보일러우측에 높이 약 1.12m 직겨애.94m의 온수탱크가 설치되 있으며 온수탱크 상단부에 연결된 높이약 1.36m길이 3.5m 직경 3.3 두께1mm의 동파이프에 사망자가 자신의 야전상의 허리 조인끈 길이는 약120   가량된다. 이걸 이용해서 목매달아 사망하였으며 사망자가 온수파이프에 매달린 상태에서 체중에 의해 동파이프가 앞쪽으로 휘어지면서 사체가 다연스럽게 바닥으로 내려와온수탱크에 기대어 앉은 자세가 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사망자는 지상 85   지점인 온수파이프를 밟고 올라가서 지상 2.36  지점인 온수파이프에 우측, 50  지점에 야전상의 허리 조인끈을 묶은 후에 올가미를 묶고 밑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온수파이프에 매달렸을 경우는 신장 165  목부분까지는 145  로 추정하였다.
끈길이 약 50  로서 지면으로 부터는 약 44  가량 되는 지점에 매달리게 되는 것으로 검증을 하였다.

*발견당시 사체 모양
사망자는 온수탱크에 상체를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양다라를 곧게 뻗고 우측다리를 좌측으로 포개어 놓은 사망자세로 편안한자세로 보일러실 바닥에 앉아있었고, 피복을 절단하고 사체현상을 관찰한바, 혀과 돌출되고 정액 및 대변이 관찰되었으며,
목에 사상방의 색흔이 형성되었고 기타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허리 및 대퇴부등에 약간의 사반과 팔다리에 강직 현상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현상들을 근거로 사망시간을 추정한 결과 사망자는 사고당일 9시 21분경 누이와 핸드폰 통화를 하고 09시 30분경 소속대병사 3명에 의해서 의무지대앞에서 목격된 점등으로 보아 09시 30분경 이후로 추정되며 먼저 사체의 강직에 의한 결과18시30분경 사체확인시 팔,다리관절까지 강직 현상이 있었던 점등으로 보아서 약 10시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사반에 의한 사망시간을 추정한결과, 18시30분경 변사자의 피복 절단시 허리 및 복부,대퇴부등에 사반이 형성되있었으나,12월 7일 영안실에 안치중인 사체 확인결과 상복부에 심인성 사반이 형성되어 있었고, 심빙성 사반은 보통 10시간 이후면 형성된다.
사체 목뒤라든지 허리 대퇴부등에 다시 사반이 형성되는 것으로 보아서 일부는 심빙성 일부는 유동성, 유동성은 5시간이내에는 혈액이 움직이기 때문에 이동될 수가 있다.
이것을 양쪽을 종합해봤을 때, 사고 약 8-9시간 경과로 역시 10시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을 하였습니다.
직장체온에 위한 추정, 추정해본결과 사체 발견후에 18시 40분경 사체 직장온도를 추정한 결과 24도로서 역시 약9시간 정도 경과 된 것으로 산출되었기 때문에 09시 30분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등 사체 현상을 보아서 09시에서 10시경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을 하였다.

*수사경과
최초의 사고현장을 분석한 결과 최초 출동수사관 및 군의관에 의한 사체 검안시 사체 전신상에 반항흔적등 타살될만한 흔적이 전혀없었고, 사상방의 색흔, 타살시에는 보통 일직선으로, 수평으로 나타나게 된다.
혀돌출, 정액유출과 대변 및 사체 현상과 사반의특징 또한 안경 전투모 육군수첩등 소지품이 사체 주변 보일러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복장이 간결한점, 또 자신의 야전상의 허리조인끈을 이용한 점 온수파이프라는 그러한 보조물을 이용한점 타살시에는 거의 보조물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경향들이 많다.자연스런 자세등에 현상에서 타살된 흔적들은 발견되지 못하였다.

*군경력 및 행적확인결과
군경력은 작년 4월 3일날 학사 33기로 삼사관학교에 입교하여서 7월1일호 육군 소위로 입관하였다.
7월2일부터 11월20일까지 초근방교육을 받았다.
11월 12일부터 19일까지 현소속데에서 소대장 지휘실습을 하였다.11월 26일 사단에 전입하여서 집체교육을받았고, 12월1일 현소속대에 전입을 하였다.
다음은 전입후 행동상황이다. 사망자가 전입4일만에 사망하였기에 4일만의 행적을 모두확인한결과 12월1일 15시경에 연대장신고를 하였고 15시 30분경에서 16시경에는 대대장신고를 하였다. 동일 16시30분경에는 9중대에 도착을해서 BOQ에서 휴식을 취하였고, 다음날인 12월2일 목요일13시경 중대장에게 전입 및 보직신고를 하였고 16시50분부터 18시경까지는 1소대와 축구경기를 같이 하였다. 22시에서 06시6분까지는 2소대 내무실에서 취침을하였고, 12월 3일 사고 전날이 되겠다. 09시부터 11시까지 소각장 및 PX청소감독을 하였고, 14시부터 14시 15분까지는 중대전체 무장구보에 참석하였다. 당시 변사사망자는 요대가없는 관계로 열애에서 있었다.
15시부터 16시까지는 소대원들과 족구시합을 하였고 16시20분에서 17시30분 대대장 주관하에 간부축구를 하였다. 18시부터 익일 04시30분경까지는 사고사망직전에 회식한 상황이다. 회식을 하였고, 새벽 04시 50분경귀대해서 BOQ3호실에서 취침을 하엿다.
사망당일인 12월 4일 08시 5분경 취침중인 사망자를 1소대장 박재용 소대장이 기상을 시켜서 08시 15분경 츄리닝 차림에 출근을 하였다가 중대장으로부터 지적을 받았고 08시 30분경 BOQ로 이동한후에 이당시에 목격한 목격자가 3명 추정되었다. 이동한후에 16시 30분경 사체발견된 상황이다.

*사망전 회식관계
사망전날인 12월3일 19시 30분경부터 중대장 진급 및 사망자전입 회식을 중대간부 6명과 함께 실시를 하였다. 19시 30분부터 21시경까지 일동 오뚜기회관에서 삼겹살과 소주를 가지고 저녁을 하였으며 21시부터 23시경까지 여기가좋겠네라는 민속주점에서 동동주 두 대를 나누어 마셨고, 23시부터 23시40분경R지 일동동아당구장에서 당구게임을 하였다. 23시40부터 익일01시경까지 역시 일동동아호프라는 생맥주집에서 3400cc를 나누어 마셨다. 01시부터 02시경까지 삼성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고 02시부터 04시 30분경까지는 이동으로 이동을 해서 PC게임방에서 게임을 즐겼다. 04시 30분경에 택시를 이용하여서 귀대를 하였고, 04시50분경 부대에 도착을 해서 BOQ에서 취침을 하였다.
사고당일 행적을 확인해본 결과 사망자는 08시 5분경에 기상후에 15분경 추리닝 차림으로 출근을 하였다가, 중대장으로부터, 질책을 받고 ,중대장 및, 1소대장에게 환복 및 세면하고 오겠다고 한 후에 2내무실로 이동하여 08시 40분경 관물대에 있던 전투복을 착용한 상태로 밖으로 나갔으며 동일 09시 15분경 내무실로 이동을 해서 내무검사중인 부소대장 길하사에게 내무실통로에 쌓아놓은 폐의류를 보고 무엇이냐는 질문을 한 후에 반대편 출입문으로 나가서 09시 21분경 누이와 핸드폰 통화를 하고 09시 30분경 BOQ방향으로 걸어간 것을 대대의무지대에서 소대원 병사 3명에게 목격된 후에 추가 목격자는 없다.

*사망자의 평소행동 확인결과
피교육중 행동상황 - 삼사관학교에서 작성한 훈육상황보고서에서 평소 말수가 적고 조용하며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훈육성적은 평균 이하였고, 군사학 성적은 우수하여다. 보병d학교에서 기록한 내용을 보명은 학습태도는 양호하나, 발표력 및 지휘력이 부족했다. 고등학교 재학시에는 조용하고 내성적이였으며 1,2학년 석차는 하위권 3학년은 중상위권 이였다는 내용이외에 특별한 상황은 나오지 않았다.

*여자관계 및 핸드폰 사용 내용 확인
사망자는 동료 및 부대 간부의 대화시에 또는 부대원 면담시에는 애인과 헤어졌다는 말을 하였지만은 친구라든지 PC통신내용 통화한 사람들과 확인해본 결과 PC통신으로 알게된 박 선의라는 아가씨이외에는 애인이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박 선의는 24살로서 부여 속셈학원 강사로 근무하고 약 1년전 사망자와 PC통신으로 알게된후 현재까지 한번도 만난사실은 없으나, 주 1에서 2회 정도 전화 및 60여통의 편지 왕례 사실이 있었을뿐이며 최근 통화 11월 29일 이다. 최근 통화에서 이상한 점은 없었고, 10월경 받은 편지에서 선배장교들로부터 군생활이 육체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심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좋은 장교가 될지 의문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핸드폰에 입력된 친구 PC통신 여자들에 전화번호를 확인해본 결과 특별한 여자관계가 확인 되지 않았다. 또 사망자의 핸드폰에 저장된 61개의 전화번호를 확인해본결과 친구 및 선후배 등이 사망자는 소심한 성격이였다는 내용이외에 특이 상황이 없었고 PC통신으로 알게된 13명의 여자중에서 11명은 만난 사실이 없고, 2명 순정 이라는 아가씨와 영미라는 아가씨는 딱 한번씩 만난적은 있으나, 애인 관계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윤 소위의 부자연 스러운 행동에 대해서 말하겠다.
사망자는 99년 10월 12일 소대장 지휘실습시에 대대장신고 및 면담중 경직된 자세로 일관하였고, 차를 마실 때 손을 떨었으며, 12월 1일 전입신고시에도 손을 심하게 떨었고, 악수할때는 땀이 흥건 하였다고 진술 하였다. 중대장 진술에 의하면 12월 3일 일동 오뚜기회관에서 중대회식시에 술을 따라줄 때 역시 술잔을 심하게 떤 것을 느꼈다.또, 동기생인 김 소인 소위, 12월 1일 대대 전입후에 동일 22시경 BOQ사무실에서 선임 소대장 2명과 소주를 마시며 대화중 사망자가 손을 심하게 떠는 것을 보고 수전증이 있느냐고 묻자 추워서 그래. 라며 얼버무리는등 긴장할 경우에 다한증과 함께 손을 떠는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 됐다.
*육군수첩에 있는 내용
소대장 실습시 작성한 내용중에 그들과 싸워가며 또 그들의 눈에 비친 나를 생각하며 나의 부하들을 지휘해야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부담 스럽다. 견장의 무게 진정느낄 수 없는 것 겉다. 어디를 바라보아야 할지 모를 시선 지정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었일까?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참 짧은 시간들이다. 그 짧은 시간동안 내가 무엇을 하는지 조차 갈피를 잡을 수 가 없다.
누가 가리켜주지 않아도 나혼자서도 모든 것을 해낼수는 없을까? 나의 주관과 나의 생각과 뜻대로 행동하며 부하를 지도 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줄은 몰랐다. 그저 마음속으로 생각만하고 그렇게 할 수 있을거라고만 상상해왔다는 내용으로 보아서 장교로서의 임무수행에 부담을 느꼈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자의 인터넷 홈페이지확인해본 결과
압수 수색영장에 의해서 사망자가 98년 1월 13일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 네피앙을 확인해본결과 시 4편중 첫 번째로 일히케스트너작 자살은 안돼, 라는 시가 수록되었다.

*동기생들에 의한 설문 및 면담결과
사망자의 입관 및 부대전입동기생 25명을 대상으로 설문 및 면담한 결과 사망자는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말이 별고 없고 11월말경 전입장교수강 집체 교육시 동료들에게 같은 95학번이면서 육개월 임관 선임학군 37기들에 대한 부담감 부담감이라는 것은 인사 및 호칭을 말하는 거다. 소대장임무 수행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표현을 한 사실이있고 할사장교들 고통된 상황으로는 장학금으로 대학 졸업 후에 수여 받은 만큼 군생활을 더 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부담감을 느껴왔다고 한다. 이내용은 사망자에 포함된 내용이 아니고 학사장교 들에 공통된 부담감을 말하는 거다. 지금까지 사망자의 평소 행동 상황에 대해서 말했다.

*수사 상황
먼저 타살가능성에 대한 수사결과를 말하겠다.
-사망자와의 갈등 예상자 사고일시경 BOQ주변의 왕례자 같은 BOQ입주자 회식중 충돌여부 행적 알리바이 등에대한 수사결과로서 먼저 갈등관계가 예상되는 부소대장 길하사이다. 분대장에 대한 확인결과 사망자부임이전 약 1개월간 소대장임무를 수행한 부소대장 하사 길 희찬에 대한 범죄행위 가능성 여부를 추궁하였으나 동인은 자신보다 군 생활이 적은 사망자에게 거수경례를 하지 않고 다수의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불손한 태도를 보이는등 사망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행동을 보였으나 전입 4일차의 사망자와 원한을 살만한 것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사단중계위원회에 회부되어 감봉처분을 받은 바가 있다.
그리고 사고당일 09시 15분경에서 12시경까지 내무검사를 주관하였고 병기 봉과제 측정 중대장에 대한 건의사황등을 수렴하는등 알리바이가 확실하기 때문에 범죄혐위를 들수가 없었다.
그외에 분대장 3명의 공이 사망자와는 99년 12월 2일 22시부터 23시 30분경까지 면담시 1회 대화하였을뿐 개별적으로 만난 사실이 없고 사고 당일 09시 30분경부터 6시까지 내무검사와 역시 중대장에 대한 건의 사황을 제출하였기 때문에 알리바이가 확실하였다.
다음은 중대장에 대한 수사이다. 중대장이 사고 당일 08시 15분경 츄리닝 차림에 출근한 사망자에게 환복하라고, 환복토록 지적한 것에 대해서 당시 지적의 강도를 확인하였으나 중대장은 독실한 기독교인 으로서 평소병사들에게 일체 욕설을 하지 않는등 착실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당시 사망자에게 점잖은 충고 형식으로 어이 윤소위 출근 늦은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는데 간부가 츄리닝 차림에 출근하면 되겠나? 빨리 갈아입어 라며 훈계한 사실이고 그 이후 12시 10분경까지 대대 간부회의를 하는등 대대원들에 의해서 알리바이가 입증되었기 때문에 역시 범죄 협의는 둘수가 없었다. 그러나 중재장으로서 회식시에 적절한 통제를 하지 못하고 함께 새벽까지 시내를 배회토록 하는등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서 사단 징계위원외에 회부하여서 근신처분을 받은 바가 있다.
다음은 강성인 중사 정일우 하사등에 대한 알리바이확인 결과 08시부터 13시 경까지 알리바이가 인정됨으로서 역시 범죄혐위를 들수 없었다.
인사장교인 구정문 중위는 사고 현장보존에 대한 조치를 소흘리한 점을 들어서 역시 사단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였다. 다음은 동료 소대장에 대한 수사이다. 변사자보다 군 경력이 많은 동료소대장들이 후배장교의 군기를 잡을 목적으로 폭행하다가 살해당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BOQ입주자중 대대중 소위 13명에 대한 알리바이 수사 결과 역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12중대 2소대장 중위 노 중위는 과음으로 인해서 사고 전날이다. 전날 과음했고, 사고당일 정상출근을 못했다. 11시까지 BOQ에서 취침하고도 유가족에 대한 상황 설명시에 허위진술호서 사건조작 의혹을 받게한 사실이있기 때문에 역시 사단징계위원회에 회부하였다.
다음은 부대원 설문 결과이다. 전대대원 3147명에 대해서 1회 소대원 25명에대한 4회에 걸친 설문 및 면담결과 사망자가 부대전입 4일차로서 특별히 만나 대화한 병사가 없는등 문제점을 밝혀내지못했다.

*사망자의 분실지갑에 대한 설명
-사망자는 회식 출발시에 츄리닝 차림에 현금 약 10만원과 장교신분증, 국민, 농협직불카드등이 들어있는 지갑을 소지 하고 있었으나 사망후에 지갑이 발견되지 않음으로서 카드이용여부를 확인해본결과 사망자등 5명이 04시 50분경 귀대직후인 05시 18분경 부대로부터 약 27킬로미터 떨어진 포천소재 월드이용원에서 1회 6만원이 사용된 사실이 확인 된 것으로 보아서 사용자가 군인인지 여부를 확인하기위해서 업주등을 상대로 확인해본 결과, 30대 초반의 장발의 민간인으로 확인, 포천 경찰서 2명의 지원을 받아서 용의자을 수사하였으나, 범인검거에는 실패하였다. 사용점표에대한 지문검사를 위해서 국방부 과학수사부 감정의뢰한 결과 잠재지문 3점이 현출되었으나,지문이 선명하지 않아서 카드사용자 확인결과에는 역시 실패를 하였다.
분실된 사망자의 지갑이 일동우체국을 경위해서 12월 14일날 회수 되었다. 사망 10일 후이다.인접부탁자가 사망자의 지갑을 일동 우체국앞 우체통에 넣은 것을 12월 4일 08시 30분경 집배원 길정식이 수거를 해서 우체국장이 09시 10분경 사망자에게 핸드폰으로 연락해서 찿아가라고 하였지만은 10일이 지나도 찿아가지 않자 12월 14일 재차 핸드폰으로 연락함으로서 사망자의 핸드폰을 보관하고 있던 헌병수사관이 수거한 사실로서 사망자가 분실한 지갑을 습득한 민간인이 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정신과 전문의에 대한 자문결과
-사망자의 유군 수첩메모나 교육기간중 작성한 장교가되는길, 평소언행,부소대장에 대한 심적 부담감등과 사망과의 인과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 국군 일동병원 신경정신과장, 민간정신과 의사를 대상으로 자문을 받아본 결과 사망자가 작성한 육군 수첩등에서 부하를 지휘하는 것이 부척이나 부담 스럽다는 내용으로 보아 사망자는 교육기관에서부터 소대장에대한 임무수행에대한 심적 부담을 느껴왔고, 손을 떨거나 땀을 흘리는 증상은 긴장에서 오는 것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에에서 나타나는 증상인 점으로 보아서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판단된다. 참고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은 리더가 될 때 더욱더 부담감이 가증된다는 소견이였다.
소속대장이 4일간에 부대적 요인으로 자살했다기 보다는 교육기간중 스트레스가 누적되었다가 전입이후 부담감이 폭발했을 가능성이 높고 즉 단기간의 스트레스가 자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내용이고 평소 소대장 업무에 대한 심적 부담감과 내무검사시 병사들앞에서 자존심이 상한 것은 내성적인 소유자에게 견디기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추정시간전 누나와 통화한 것은 가족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싶은 욕망때문이며 이때 어떠한 신호를 보냈을 가능성이 없지 않겠느냐?
이러한 종합소견으로서,사실상 자살 징후판단은 곤란하나, 상당히 심적 부담감과 소대원 앞에서 자존심이 상해 충동적으로 자살을 실행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견이었다.
*현장수사 전문가에 의한 자문결과이다.
-경찰현장 감식전문가를 대상으로 현장설명과 VTR시청 사진판독 후 작극에 대한 자문 결과 현장 및 사체 현상으로 보아서는 자살로 판단된다. 교사로 보기는 어렵다는 소견이었고 사체가 자년스럽게 앉아있을 수 있는 상황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고 사후에 축늘어진 상태에서 사체가 밑으로 처졌다면 그 자세는 예측할 수 없다는 소견이였다.

*현장 감식결과
사고현장에서 지문 체취를 위해서 국방부 과학수사 연구소에 의뢰해 현장 감식을 실시하였으나, 온수배관 파이프에 먼지가 많은 관계로 잠재지문 검출에 실패하였다.
참고로, 먼지위에서는 지문의용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사망자의 팬티에 묻은 정액 및 대변은 확인을 위해서 동아연구소 법의학과에 감정 의뢰한 결과 정액은 발견되었으나, 대변은 극히 소량으로 불확실한 것으로 감정되었다.

*거짓말 탐지 실험
-수사 과정에서 사고 당일 11시까지 BOQ에서 취침하고도 08시경 출근당시 사망자를 보지 못했다고 허위 진술했던 김 노중을 대상으로 사망자의 구타여부에 대한 거짓말탐지 실험결과 거짓반응을 발견하지 못했다.

*사체 검안 및 부검에 대한 소견
-12월 17일 15시18분부터 16시 20분경 까지 국방부 과학 수사연구소 법의학 군의관 대위 박경신이 사체 외부에 대한 겸안 및 부검결과 사망자의 경우 전형적인 의사체의 소견으로서 외견상 타살흔적이 전무하고, 살해 후 자살로 위장할 경우에 색흔 내부에 피하출혈등 색흔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부검당시에 현장에 참여했던 분들은 아마 이해하셨을꺼다.
의사의 전형적인 특징인 심장 및 폐부분의 정상출혈 결맥의 일혈점 장기우렬 심장내의 암적색,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는등 전형적인 의사로 판단하였다. 전부다 잘아시겠지만은 의사라는 것은 자기 체중에 의해서 사망에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밑에 글은 유가족,군단수사관,천주교인권위원회측의 대화내용입니다.---------
                 **발표 견해(녹음테이프 체록내용)**

유가족:차이가 없습니다. 그쵸. 발표하신분이 더 잘알겠지만 그때 그이야기나 지금 오늘 발 표한 내용이나 똑같습니다.그러기 때문에 저희들은 그때그내용을 들었을 때도 우리는 이게 납득이 안간다고 그랬는데 오늘도 납들이 안갈 수 밖에 없조. 그러니까 나머지 수사를 군단에서 촛넘을 맞쳐서 납득이 갈 수 있는, 타살이든 자살이든 간에 정확한 원인을 규명해 주는데 초점을 맞쳐서 최선을 다해서 수사해 주기 바랍니다.
유가족:그러면 제가 한 말씀만 드릴께요.그 왜냐하면은.........
군단 수사관: 죄송하지만 성함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유가족:고무부됩니다.
군단 수사관: 큰고무부 되십니까? 성함이......죄송하지만
유가족: 홍 순목입니다. 저희의문사황은 최초부터가 상당히 의혹이 많습니다. 시간대부터 시작해가지고, 많은 것이 우리가 보았을 때, 과학자는 아니지만 우리쪽에서 보았을 때 도저히이렇게 될 수 가없다.의문이 상당히 많은데 그야말로 우리가 납득이 갈 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십시오.
천주교: 오늘뭐 8사단 헌병대에서 수사하 수사하신 결과를 저희들이 들었는데요. 과거에 저희들이 최초에왔을 때 헌병대장님이 초반에 설명했덩 상황 하고 전혀 다른게 없어요.
군단 수사관: 아. 그거는 저 수사를 했는데, 저희들이 그동안 내려와서 수사해왔지 안습까?
제가 지금 발표해도 크게 틀려지는건 없습니다. 지금까지 수사한 내용으로서는.........
천주교: 그런데 제가 드릴말씀은 그뒤에도 충분히 수사할 수 있는 기간이 이었을 텐데...... 제가 오늘 비디오테입 그동안의 수사 결과 과정에대한 발표도 듣고 또 비디오 테입도 보고 현장에서 가서 봐도 도저히 상항에 대새서 이해를 할 수 가 없어요. 그리고 맞지 않는 상항을 상당히 억지로 짜맞추고 그럴듯한 느낌을 충분히 가질수 있는 소지가 충분히 많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수사결과에 대해서 앞으로 저희 인권위원회와 안동대학교와 유가족이 사건을 공정하게 재수사를 해달라고 다시 육본이나 국방부에 요청을 했기 때문에 이수사결과를 앞으로도 지켜볼것입니다. 그리고 군부대 의문사가 이런식으로 해서 전부다가 의사로 처리되고 의사를 갔다가 의문사를 전부다 자살고 처리된다면 앞으로 더 이상 되풀이 된다면 안된다고 봅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많지만 오늘 수사결과에 대해서 저는 아무런 할 이야기가 없어요. 정말 수사를 그동안 안했다응 것 밖에는 ..........
군단 수사관: 그걸로 좋습니다. 그거는 됐고요.저희들이 만약에 일단 자살 혐의점이 없는걸 소속대원들이 위장을 한다고 했을때는 이렇게 안합니다. 그거는 한번 염두를 드고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지금 민원을 연기시켜놓고했거든요. 오늘 오시면 고무부님과 전화 통화를 했을때도 의문점 관계를 이야기했고 했는데, 무턱대고 큰고무부님 홍순목씨는의문점 투성이다.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말고,비디오도 보실만큼 보셨고 하니까 오늘은느낀 감정이라도, 기록은 못가져 오셨다고 하니까 오늘 현장 검증 하신것도 봤으니까, 어떤부분이 의문점인지 해야지 저희들이 재수사에더.....
천주교: 저희가 그말씀 드리면 잘말씀하셨어요. 지금VTR을 틀 때
저희가 봤던 테입들이 짤라 없어진 부분들이 있고 지금 저희가 보고자 하는 기록들도 제대로제출이..........
군단 수사관: 그부분은 저희가 결론을 내릴게 기록하고
천주교: 그러한 것들이 제출이 안되기 때문에 그렇게 현장에서도 제출 안된다고 하니까 나중에 협조를 통해서 다시 요청을 하겠지만 그런게 안되는 상항에서 우리가 정확히 어느부분이 됐다고해서.....
군단 수사관: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저희들이 수사를 홀딩을 시켜놓고 저희들이 현재 이 자리에서 사단 검찰관이나 사단 검찰부장 나오셨지만 기록을 복사를 해 드린다든지, VDO테입을 못드리니까 현장에거 그거를 국방부로 협조 공문을 보내셔 가지고 저희들한테 주라고 지시가 떨어지면 그걸 받아보시고 다시 검토를 하시고 의문점을 제기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저희들이 하는 수사를 일단 받아보시겠습니까?
천주교: 그건 뭐 국방부에서 내려온 공문에 의해서 할꺼고 그건 지금 제기할꺼는 아니고요. 저희들이 다시 한번 가족들과 다시의논을 할겁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말씀드리고.....
군단 수사관: 그러면 현재 지금....
천주교: 의문점에 대해서 자꾸 이야기하라고 하는데.....
군단 수사관: 지금 보내신 부분에 대해서 지금 계속 연장을 시켜 났기 때문에 지금 거기서 1차로 먼저 답을 해드리고 다시 나중에 의문점을 제시 하겠습니까? 아니면 이것을 홀딩을 시켜놓고, 가족들이 보낸것도 이것들을 홀딩을 시켜놓고 연기를 시켜놓고 그쪽에 자료를 어떠한 방법 국방부에 협조를 하든지 해서 의문점을 다 추려서 국방부 장관으로 하든지 하면 다 저희들에에 떨어지든지 아니면 딴 수사기관에 떨어지든지, 떨어져서 그쪽 수사를 다시 제기하는 것이 좋은지 묻는 겁니다. 어짜피 그것에 대해서 민원을 접수 시켰었습나다.
천주교: 그부분까지 이야기 할 필요가 없구요. 지금 수사하고 있었던 그 자료만이라도 제출 받아서 거부하는거 아닙니까? 법적으로 안된다.
군단 수사관:...............
천주교: 안된다고 말씀하시니까 그부분도 다른 부대 어떤 부대는 주는 부대도 있어요. 그게 안된다고 그러니까 가족들한테 정확하게 지적할려면 그런 자료들도 있어야 하는데 자료를 안주시겠다고 하니까 나중에 차후에 가족들과 저희들이 논의를 해가지고 다시 육본을 통하든지 국방부를 통하든지


● 유가족 의견 : 군측 수사 발표에 대한 유가족측 의문사항

1. 자살 동기가 없다.
-집안에 크게 어려운 점이나 자살할 만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
-고민할 만한 심각한 여자관계가 없다.
-학교친구들이나 고향친구들의 증언에서도 대인관계에 문제점이나 성격상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다.
-평소의 성격이나 생활태도 등에서도 자살동기를 가질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다.
-전입일 12월 1일이후 사고일 12월 4일까지의 짧은 기간동안 자살동기가 있었을까?하는 의문
-동기생(학사)들의 진술
  같은 대대의 동기
   :소대장이 된것에 대하여 자랑스러워 하며 중압감과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
  다른 자대에 배치 받은 동기
   :앞으로의 계획과 소대장으로서의 포부를 이야기했고, 모든 것들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기대로 가득차 있었다.
※군측 수사에서도 제시하지 못하는 사항이다.

2. 12월 3일∼12월 4일까지의 행적에 대한 수사발표에 있어 은폐의 의혹이 있다.
-최초 유가족에게 사건 발생 경위 발표(12월 4일 사건발생 이후 가족 도착시)와
 현재(12월 7일 수사경위 발표시)의 발표에 번복되는 사항이 있다.
 ①최초 유가족에게 사고당시 목을 맸던 야상끈을 1개의 끈으로 이어서 목을 맸었다고 했지만 이후 SBS방송국(12월 6일) 기자의 질문에서는 2개의 끈으로 목을 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사고경과 발표(12월 7일)에서는 1개의 끈(121.5㎝)으로 목을 맸다고 발표한데 대한 의문이 있다.
  ※사단 헌병대장의 사과발표가 있었지만 조작의 의혹이 남는다.
 ②최초 유가족에게 사고전 행적 설명에서 회식중 술을 마실 때 3차에 걸친 술을 마셨다고 했는데 이후 발표시 2차의 술을 마셨다고 했다.
 ③회식때 갔던 정확한 장소에 대한 답변 요구시 회피함.
-군측에서는 윤소위가 회식때 지갑을 분실하였고 사고당일(12월4일) 새벽 05시 15분경 분실한 지갑에 들어있던 신용카드를 포천의 어느 술집에서 장발의 30대 초반의 남자가 6만원 상당을 사용하였으나 군측에 답변 요구시 민경에 의해 추적중이라는 말뿐 그 술집에 대한 정확한 발표를 거부함.
-군측 수사발표시 지갑분실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유가족측에서 의문 제기.
 수사를 소홀히 했거나, 은폐의 의혹이 있다.
※군측 발표에 따르면 사고당일(12월4일) 새벽 04시 30분경 윤소위가 포천 일동의
 어느 P·C방에서 나와서 택시를 타고 부대로 복귀를 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P·C방에서나 택시비는 무슨 돈으로 했을 것이며 만약 그때까지 지갑을 가지고 있었다면 04시 30분경부터 05시 15분까지라는 45분의 시간동안 지갑을 습득하여 포천으로 이동해서 6만원 상당의 돈을 술집에서 사용한 경위에 대한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의문이 남는다.

3. 사망 경위에 대해 납득할 만한 정황이 아니다.
-변사체로 발견될 당시 자세가 목을 매고 자살했을때의 자세라고 말하기에는 어렵다.
※변사체 발견시 보일러에 등을 기댄채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위에 올려 꼬았고, 오른손은 오른다리 위에 올려져 있어으며, 고개를 숙이고 파이프 하단부가 꺽여 있었고, 목과 파이프 사이에 줄이 팽팽하게 이어져 있었다.(최초 목격자 진술)  
-만약 목을 매고 자살을 했다면 동파이프의 줄을 매었던 자리가 몸무게(약65∼70Kg)에 의한 순간적인 충격으로 인한 어느 정도의 휘어짐이 없다는 의문이 있다.(동파이프는 사람이 손으로 순간적으로 힘을 가했을 때도 휘어짐)
-변사체의 목과 동파이프의 위치상 군측에서 제시하는 증거물인 야상끈(121.5㎝)의 길이상 목을 매기에는 터무니 없이 짧다는 의문이 있다.
-군측에서 제시하는 현장이라면 윤소위가 목줄을 앞으로 매었는데, 앞으로 목줄을 매어서 과연 사람의 기도가 막힐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시신을 확인해 보면 목의 주위로 빈틈이 없이 줄에 조인 상처가 남아 있는데 일반적으로 목을 매었다면 목줄이 매인 일부분에 있어서는 줄에 조인 상처가 없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있다.
-증거물로 제시한 야상끈의 두께와 목 주위의 상처의 두께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시신의 목 오른쪽 부위의 목 상처에 S자형 굴곡에 대한 정확한 경위가 궁금하다.
-변사체의 발견시(인사장교와 화학선임하사의 진술) 동파이프와 목에 매인 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고 했고 고개를 숙인채 였다고 했는데 과연 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면 고개를 숙인 상태였을수 있을까 하는 의문
 ※최초 목격자인 인사장교의 설명 체록
  -인사장교:대대 인사장교입니다. 최초 목격한 그 위치는 지금 서 있는 위치(보일러실 문을 열었을때 제일 윗쪽 계단)에서 제가 본부중대장하고 그리고 일직사령하고 올라오다가 이쪽이(보일러실) 의심스러워 가지고 불이 켜져 있는 것이 의심스러워 가지고 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이쪽 위치에서 처음에는 이쪽을 보고 그쪽을 봤는데 완전히 그땐 겁이 나 가지고 완전히 들어가진 못하고 이렇게 봤습니다. 그때 윤소위 자세가....... 한번 재현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보일러통에 등을 기댄 자세로 발은 쭉 뻗어 있었고 발이 꼬인 자세로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자세는 최초 본 자세는 이 자세였습니다. 저는 여기까지 목격을 하고 목에 줄끈이 굉장히 팽팽하게 그래가지고 바로 교육기관에서 배운 것이 사람이 그때 당시에는 죽었다는 석이 판단이 되고 그당시 바로 지·통·실로 보고하러 뛰어갔습니다.
 ※화학선임하사의 진술 내용 체록 부분
  -화학 선임하사:그 당시...... 라이타 달라 그래서 바로 받아서 라이타 불 댔는데 거의 1초 라고 말할수 없을 정도로 바로 탁 끊어졌습니다. 불 대자마자 줄이 너무 팽팽해서 그랬던 것 같은데 불 대자마자 바로 탁 끊어졌습니다.

4. 최초 목격후 현장보존에 대한 의문
-최초 목격후 수사 시작이 17시 25분에 시작하여 19시 05분경에 시신을 옮겼는데, 약100분의 시간안에 모든 현장조사를 완료하고 유가족측에 보여주지 않은채 사건 현장을 훼손하게된 경위가 의심스럽다.(1차 유가족(이모부) 도착시간은 21시경)
-사고 당시 목을 맸던 동파이프의 최초 위치에 대한 보존없이 파이프의 위치를 이동시키    며 현장을 훼손한 이유가 의심스럽다.
-동파이프에 매어져 있던 끈어진 야상끈을 현장보존을 위해 그대로 두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야상줄의 길이를 재기 위해 풀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길이를 잰다면 처음 그대로 매어져 있는 상태에서 변사체의 목에 감긴 줄과 닿을 수 있는가?의 길이를 재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남는다.(야상줄은 최초 목격자 이후 화학 선임하사에 의해 라이타 불로 끊어짐)
-보일러실에 대한 현장보존을 위해 군측에선 테이프와 경계병 2명을 세우고 있지만 부대 출입시 누구든 제지 없이 출입이 가능했음.

5. 목을 맸던 야상끈이 바뀐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문
-최초 사고현장을 촬영했던 비디오 자료에 나온 야상끈과 이후 군측에서 제시한 야상끈이 끈의 두께와 색깔에서 차이가 있어 보이고, 비디오 자료에서 끊어져 동파이프에 매어져 있는 야상끈의 끝 부분은 섬유가 조금은 너덜해 보일 정도 였지만, 이후 증거물로 보여준 야상끈의 끝 부분은 라이타 불에 태워져 깔끔하고 뾰족하게 되어 있는 상태였다.
-최초 사고현장 비디오 촬영내용의 야상끈 매듭후 여유부분과 유가족에게 보여준 현장검 증중의 매듭후 여유부분의 길이의 차이를 보이는 이유.
 혹시 야상끈의 길이를 맞추기 위한 조작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남는다.
 유가족의 최초 현장검증시 동파이프에 야상끈이 2회 감겨 매어져 있는 것 같았는데 이후 현장검증에서는 1회만 감아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이것도 길이를 맞추기 위한 조작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있다.

6. 사고 당일 회식후 부대 복귀후 04시 30분이후 목격자 진술에 차이점이 있다.
-BOQ 같은 방에서 잤던 김철수 중위와 노준호 중위의 진술에 차이점이 있다.
 마지막말 BOQ에서 같은 방에 잤던 소대장들의 진술 체록 내용
 ☞질문:윤소위와는 언제 같이 잤나?
  -김철수 중위:전입온 첫날밤과 3일날
 ☞질문:그날 아침 상황은?
  -김철수 중위:06시경에 화장실에 갈려고 잠을 깼는데 제가 02시에 들어왔을때는 윤소위가 없었는데 화장실 갈 때 처음 봤습니다. 06시에 '아! 자고 있구나' 하고 화장실에 갔다와서 다시자고 07:40분에 출근했습니다. 그 시간에 윤소위는 자고 있었고 그 이후 못봤습니다. 그리고 17시경 사고내용을 들었습니다.
 ☞질문:아침에 몇시에 일어나셨어요?
  -노준호 중위:08시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바로 출근했습니다. 저는 아침에는 윤소위를 보지 못했습니다. 전날 2시에 밖에 외출 했다가 늦게 들어 왔습니다.
  -헌병대장:다시한번 얘기 해봐요?
  -노준호 중위:그 전날 외출해가지고 나갔다가 제가 들어와서 잤을때는 제가 2시에 들어왔고 윤소위는 저보다 늦게 들어 왔습니다. 잠결에 윤소위가 옆에 누워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새벽에 바로 제옆에 잤기 때문에......
  -헌병대장:바로 정확하게 해야돼. 당신. 2시에 소대장이 들어왔고 윤소위는 04:30분 경에 들어 왔는데......
  -노준호 중위:그건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헌병대장:그랬는데 아침에 잠을 그렇게 잤을거 아니예요. 그러면 아침에 출근할 때 윤소위를 못 봤어요?
  -노준호 중위:예. 제가 좀 늦게 일어났습니다. 제가 출근을 08:30분 까지 해야 되는데 좀늦게 일어났습니다.
  -헌병대장:그러면 김철수 중위는 봤어요, 못봤어요?
  -노준호 중위:더 늦게 나갔습니다.
  -9중대 1소대장:제가 윤소위를 깨운 시간이 제가 08:00에 일어나서 제가 그 옆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같은 중대니까 깨울려고 방으로 갔는데 그때는 윤소위 혼자...... 그때가 08:05분쯤 이었습니다. 바로 깨우고......
  -헌병대장:그러면 두사람중 한사람은 거짓말 한다는 소리네.
  -9중대 1소대장:아! 근데 제가 방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서 본게 아니라 바로 문을 열면 방이 이렇게 딱 보면 이쪽 구석은 안 보이거든요. 안보이기 때문에 노준호 중위가 어느 쪽에 자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본 것은 그 문앞에서 자고 있는 윤소위를 소리를 질러서 깨우고 일어나는 것을 보고 제가 나왔습니다.
  -헌병대장:한방에 잤는데 못 봤단 말이예요?
  -노준호 중위:예. 저는 못 봤어요. 전 늦게 일어났습니다.
 ☞질문:중대장 윤소위 몇시에 왔어요?
  -중대장:행정반에 08:15분에 들어왔습니다.

-최초 유가족 도착시 상황 설명에서는 사고당일 09시30분경 순회진료 대기중 최후 목격자인 사병이 7명이었다고 제시 했었으나, 이후 수사 경과 발표시 사병 3명으로 번복됨.
※사고당일 09시 30분경 윤소위 누나와 전화 통화를 했으며, 통화 내용 평소대로 일반적인 안부내용 이었음.  (군측에서 제시한 사망 추정시간은 10시)
  전화 통화중 주위에 사람의 음성이 들렸다는 누나의 진술과는 달리 목격자들중 전화통화 중인 윤소위를 목격한 사람은 없음.

8. 소대원에 대한 사고후 진술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음.
-함께 생활했던 소대원이나 부소대장에 대한 접촉도 할수 없고 군측에서 수사한 내용이 전혀 없다.
-단 3일 이었지만 함께 생활했던 부소대장이나 소대원중 아무도 조문객으로 오지 않았다는 점이 혹시 유가족측과 접촉을 기피하여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이 있지 않은가?하는 의문

9. 자살에 치우친 사건조사 경위
-유가족(아버지)이 최초 연락을 받은 12월 4일 16시 50분은 최초 발견 20분 후이고, 현장조사도 시작하지 않은 시간인데 중대장이"목을 매고 죽었습니다."(자살로 추정하는 어휘)라고 말한 근거는 무엇인지 의문이 가고, 이미 자살로 규정짓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다.
-2차 연락시에도(17시 40분경) '목을 매고 죽었다'고 했다.
 ※최초 수사관 도착시간 17시 경이었고 현장조사 시간이 17시 25분이라고 했는데 약15분의 시간동안 자살로 말하기에는 수사에 미흡한 점이 있지 않은가?하는 의문
-SBS방송(12월 6일 8시 뉴스)과 사건경과 발표중(12월 7일) 법무참모의 사고 경위 발표내용에서 수사가 종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살로 추정된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자살이라는 결론하에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
※사건경과 발표 체록 내용(12월 7일)
 ☞질문:방송상에서 법무참모/검찰부장이 자살이라고 본 이유는 무엇인가?
  -법무참모/검찰부장:사망신고 전화 접수를 17시 받고 검찰부에 가서 서기관을 데리고 17시 25분경에 도착하여 보일러실에 들어가서 제가 현장을 살펴보았는데 사체에 손은 대지 않고 대부분 제가 생각할수 있는 범위내에서 간단하게 현장검증을 제 나름대로 했습니다. 시간조사를 해보고, 그런데 첫 느낌부터가 상당히 반항의 흔적이라든지 이러한 부분에서 벌써 심증이 옮디다. 자살에 가깝지 않나 이런 심증 편성을 언제든지 해요. 하고나니까 물론 선입견이라서 수사에 방해를 할 소지는 있지만 솔직한 말씀으로 자살했다 고 생각했습니다. 변사체 여부 되는지 여부에 대해서 사실상 교통사고를 일으켰을 때 사망이 명백하게 됐다고 그러면은 이건 변사체가 아니죠. 사고 사망자입니다. 변사체가 되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제 심정으로는 자살쪽에 가깝지 않나 그리고 나서 거만을 할 때 군의관이 거만을 할 때 중간부터 지켜봤는데 그때도 정액이 분비가 되어있고 변은 솔직히 제 눈으로 정확히 못 봤습니다. 그리고 수사관들의 이야기를 들었구요. 변이나 기타 이런 이야기를 직접 들었고, 동공이 확대되어 있었고 여러 가지 증상도 있고요, 자살시에 나타나는 일단 육안으로 확인할수 있는 모든 자살 징후가 모두 일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육안으로 뿐만아니라 부검까지 해봐야지 고인이 되신 사체를 통해서 얻어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나오겠죠 하여튼 육안상으로는......
-윤소위의 주변인물들중 여자관계와 같은 자살 동기를 찾기 위한 군측의 수사는 자살 시나리오 작성후 근거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있다.

10. 동파이프 파손에 대한 해명 필요.
-최초 동파이프가 꺽여진 채로 현장이 발견되었지만 현장에 대한 보존없이 이후 동파이     프가 부러진데 대한 해명이 필요.
-최초 동파이프의 꺽여진 흔적을 은폐하기 위한 조작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남는다.

11. 최초 현장 촬영 사진과 비디오 촬영 내용을 유가족측에 주겠다던 약속과는 달리 SBS방송 이후 현재 보관하고 있는 군측의 권한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적인 절차를 밟아 변호사 선임후 법적인 한도내에서 주겠다고 번복하게된 이유에 대한 의문.

12. 12월 9일과 12월 10일에 군측 수사관들이 영안실에 와서 시간이 지나면 시신이 상할 수 있기 때문에 비디오 촬영과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그러기 이전에 시신보존에 좀더 새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시신 보관 온도는 영하 1도) 그리고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는 가족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해야하는 것이 정상적일 텐데 처음 누나만 조용히 불러서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증폭시킨다.

● 현재의 상황 : 수사종결되었고, 자살로 최종통보 되었음.
故 윤광열 육군소위의 시신은 벽제화장터에서 화장되어 벽제납골당에 안치되었고, 군측에서 15년간 유골을 보관하기로 했으나, 유가족이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서 유가족이 유골을 보관하는 쪽으로 유도하므로써 현상황은 유가족이 유골을 보관하고 있음.
유가족측에서 재수사를 요구해 놓고 있는 중임.

※ 육군본부로 부터 발부된 사망확인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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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4일 경기포천 지구에서 자살 하였음을 통지합니다."
담당부서 : 육군본부 부관감실
책임자 : 정현봉
담당자 : 심종근
연락처 : (042)550-1657
2000년 1월 17일
육군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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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이름 군별 계급 소속부대 사고일자 사고유형 심의결과 조회
108 정광운 육군 중위 보병제22사단53연대3대대본부중대.. 2006.10.05 사망 15613
107 이홍준 육군 일병 5사단 2008.5.14 사망 14971
106 봉원선 전경 이경 목포해양경찰서 279함 288기 2008.4.29 사망 기타 14213
105 주정욱 육군 이병 22사단 53연대 1대대 3중대 반암.. 2001.03.06 사망 기타 13598
104 이영섭 육군 일병 3250부대 2대대 8중대 2소대 2008.04.21 사망 12872
103 최 혁 육군 상병 30사단 2007.09.19 사망 기타 11757
102 이상훈 육군 이병 제12사단 신병교육대 2000/10/27 사망 공상 11703
101 윤광열 육군 소위 제8사단 10연대 3대대 9중대 2소.. 1999/12/04 사망 사상 11460
100 김찬수 육군 일병 수기사 7313포병여단 808 포병대.. 1997.08.28 사망 공상 10841
99 방덕성 육군 하사 5사단 방공중대 2008.4.27 사망 기타 10825
98 이재섭 육군 이병 육군 제27사단 99연대 3포대(803.. 2002.07.23 사망 기타 10306
97 이규완 육군 상사 육군 제 50사단 12연대 1973.09.15 사망 사상 10262
96 장종식 해병대 일병 해병대 연평부대(대청도 해안중대.. 03, 07,14 사망 기타 10166
95 서상일 육군 이병 5759부대(5기갑여단 39전차대대 .. 1999.08.14 사망 사상 10135
94 유승환 육군 이병 육군 제51사단 3075부대 2대대 6.. 2002.5.25 사망 기타 1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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