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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훈련소-더 이상 눈물이 땅'전락'되어서는 안 된다...
ㆍ작성자: 정의승리 ㆍ작성일: 2016-06-30 (목) 22:18 ㆍ조회: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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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채재일 발행인,정두근 예비역 육군중장(★★★). 서상국 육군훈련소장(★★)>


스푼에듀닷컴 채재일 발행인은 논산의 육군훈련소를 찾았다. 43대 육군훈련소장을 역임했던 예비역 육군중장 정두근 장군과 함께였다.지난 2014년 6월 21일, 강원도 22사단장 역임당시,임모 병장 K-2총기난사 사건 이후[보직해임]되었다가 잠시[대기발령]상태이후, 신임훈련소장 내정된 서상국 소장은 본부 건물 밖에까지 나와 환대하며 취재에 적극 응해 주었다.육군훈련소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111, 현 위치인 논산시 연무읍 일대에 제 2훈련소라는 이름으로 창설되다. 부대창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휘호로 연무대라고 명명하여 국민들에게는 연무대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연무대(練武臺)는 무예를 단련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원래 이 곳은 연무대가 아닌 구자곡으로 불렸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 이서구라는 학자가 지금의 논산시 금곡리(입소대와 훈련소 사이)를 지나면서 "이 곳의 지형은 금계포란(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모양)형이다. 이곳에서 겉보리 천석이 나오겠다." 라고 말했다 한다. 그래서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지형에서 무수히 많은 아들(자식)이 번창한다" 는 의미로 구자곡이라 불리었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숱한 아들들이 와서 열심히 훈련 받고 있으니 그의 예언이 적중한 셈이다. 또한 훈련소 일대에는 군과 연관된 지명이 많다. "아들들이 많기 때문에 이곳에 오면 안심할 수 있다."라고 해서 안심리(安心里), "훈련이 끝나면 타고 갈 말이 준비되어 있다."하여 마산리, "조국을 위해서라면 대나무와 같은 절개를 지켜야 한다."는 죽본리(竹本里)등이 그렇다.

단일부대로 세계 최대 교육기관이라는 논산 육군훈련소는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1951년 창설하여 63년 동안 756만 명의 장병을 수료시켰다.면적은 6,322,722평방미터로 서울상암월드컵 경기장 109개의 크기이며, 여의도 면적의 7.5배에 이른다. 이 넓은 훈련소에 연간 12만 명의 장병들이 거쳐 가니 전반국군의 4/1(25%)이 이곳에서 군복무를 시작하는 셈이다

본격적인 취재에 앞서 훈련소장 집무실에서 핵심 간부들과 함께 잠시 환담을 나누다보니 육군훈련소는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병영문화 선진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정두근 장군이 2005년 육군훈련소장으로 부임하여 시작한 상호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 운동의 핵심인 병사 상호간 존중어 사용하기는 육군훈련소의 문화로 자리 잡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훈련교관과 조교들도 훈련병들에게 존중어를 사용하며 훈련병들의 인권을 존중하기에 훈련소 수료를 앞두고 훈련병들의 소원수리를 받아보면 교관들에 대한 불만보다 상훈을 신청하는 내용이 더 많을 만큼 훈련소 분위가 바뀌었다고 한다. 훈련소장부터가 자신의 군화를 직접 닦고, 참모들을 비롯한 부하들에게 절대 반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훈련소 나름대로의 고충도 있었다. 훈련소에서 아무리 노력하여도 수료 후 자대배치를 받고 나면 일선부대 현실이 훈련소의 인권존중문화를 따르지 못하기에 병사들 실망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군 생활을 하면 안 되는 부적응 병사들을 훈련소에서 걸러내야 하는데,그러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관심사병을 그대로 수료시키는 데에 따른 불안감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서상국 훈련소장과 병영문화개선에 대하여 진지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훈련소를 둘러보기 위해 집무실을 나왔다.자유롭게 취재하기 위해 안내장교의 도움 없이 정두근 장군과 함께 훈련소를 돌아보기로 하였다. 마침 점심 식사사간이라 열을 지어 식당으로 향하는 훈련병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걸음걸이가 매우 자연스러웠다. 각 잡힌 군대문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동행한 정 장군은 외형적 군기를 강조하는 근대적 병영문화를 탈피해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야 병사들이 시키는 일만 하는 피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교육 훈련에 나서므로 군인에 대한 국민들의 고정관념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때마침훈련소 입소식이 있는 날이어서 입소대를 찾았다. 2014년 4월 7일,윤모 일등병 집단구타 사망사고 이후 해당 이순광 28사단장(★★),그리고 직속 6군단 이범수 중장(★★★)이 군복을 벗은 만큼 사건의 여파는 깊고 컸기 때문이다. 그 이전 방문했던 의정부 306보충대와 102보충대하고는 입소인원과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연병장으로 향하는 길은 입소장병들의 가족과 친구들로 마치 퇴근시간의 명동거리 만큼이나 붐볐다. 반려견까지 데려와 이별의 정을 나누는 모습은 새로운 풍속도이기도 했다.

특히 어머니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단지 눈물이 아닌 환한 웃음으로 서로 격려하며 손을 쥐는 모습이 옛날보다 한결 여유 있어 보였다. 올해는 특히 병영사건 사고가 많은 해였으나 입소장병이나 가족 누구도 겉으로는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아들의 등에 업혀 연병장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표정에서도 행복함이 묻어났다. 사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군 입대날이 아니라면 무뚝뚝한 아들의 등에 업힐 일이 없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습만 본다면 입소식이 아닌 축제 분위기에 가까웠다. 군악대는 딱딱한 군가보다 최신 유행곡 연주를 더 많이 했고, 입소식을 기다리는 동안 걸그룹 공연까지 있었다. 재미있는 일은 걸그룹 공연을 가족들이 더 즐긴다는 것이었다. 막상 입소장병들은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겠기에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바빴으나 가족들은 걸그룹의 노래에 맞추어 박수치고 환호했다. 그리고 드디어 입소식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장병들은 가족들에게 불끈 주먹을 쥐어 보이고 연병장으로 뛰어나갔다. 우리 젊은이들은 세간의 걱정처럼 나약하지 않았다. 이들은 오늘부터 국가의 부름을 받은 군인으로 새롭게 태어나 청춘을 국가에 바칠 것이다. 그렇기에 국가와 군은 이들을 잘 보호하고 강한 남자로 만들어 2년 뒤에 가족으로 품으로 사회로 돌려보낸 책무가 있다. 누구나 과거 군인 가족이었거나, 현재 군인 가족이거나, 미래의 군인 가족이 될 국민들 역시 이 젊은이들의 안전을 위해 국가와 군의 역할을 지켜보며 때로는 격려를 때로는 질타를 할 필요가 있다.

예상비해 밝은 입소식을 지켜본 다음 육군훈련소에서 꼭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곳을 정 장군의 안내로 찾아갔다. 바로 상호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 정착비였다. 훈련소 복지관 앞의 작은 정원 복판에 세워진 기념비를 마주치는 순간 드디어 전설을 확인한다는 흥분에 가슴이 설렜다. 이 기념비는 *훈련소 중대장이 화장실 청소상태 불량을 이유로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인 사건으로 국민의 공분을 자아냈던 사건 직후 훈련소장으로 부임한 정 장군이 상호존중과 배려운동을 적극 펼쳐 침체된 훈련소 분위기를 되살려 놓은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소문으로만 듣던 것이었다. 그 기념비 앞에 이 운동의 주역인 정 장군과 함께 서니 감동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운동이 전군으로 확산되었더라면 올해와 같은 비극적인 병영사고도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뒤섞이는 미묘한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육군훈련소인분사건(陸軍訓練所人糞事件): 2005년 1월에 대한민국육군훈련소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신병을 교육하는 교관(중대장)이 화장실 청소 상태를 문제 삼아 피교육 훈련병 192명에게 인분을 찍어 먹도록 강요한 가혹행위를 벌인 사건이다.2005년 1월 10일에 훈련소 29연대 11중대장 이경진 대위(학사 35기)가 훈련병의 용변 뒤처리 미흡을 문제삼아 중대 소속 192명의 훈련병 전원에게 대변을 손가락에 묻혀 2회에 걸쳐 5초간 입을 벌린 상태에서 입에 넣었다 빼도록 하였다. 이는 사건 발생 후 10일이 지나서야 피해 훈련병의 편지 통해 외부에 그 사실이 알려졌다.이에 대해 군 소식지인 국방일보는 사건이 외부에 공개된 20일로부터 4일이 지난 24일에야 특별기고에서 언급했을 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아 이런 현상에 대해 군의 폐쇄성과 자기 식구 감싸기 행동이라는 비판이 있다.특히 제보자의 편지 내용에는 언론에 널리 알려달라는 내용이 있었지만 사건을 취재한 MBC 사회부 백승규 기자는 "훈련소에서 일부 사실을 확인해준 정훈참모의 말을 들은 뒤 얼마 안돼 논산 제2훈련소장이 나와 '보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게 애국이다. 군이 많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부탁했다"며 "그러나 오히려 알리는 게 애국이라고 설득하고 보도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2005년 2월 3일 육군 본부는 육군훈련소 인분 사건의 특감결과를 발표하고, 이 사건의 책임을 물어 육군참모총장은 허평환 소장에 경고 조치를 내리고, 연대장(대령)과 교육대장(소령),지원과장(대위),교육과장(대위), 분대장(병장),교관(중위)등 14명을 각각 징계위에 회부했다고 밝혔다.또한 사고 발생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훈련소 헌병대 파견대장(중령)과 수사관(준위)은 모두 교체하기로 했다.하지만 이에 대해 가혹행위 가해자인 중대장(대위)보다 하위 계급인 분대장(병장)을 징계한 것은 하위 계급자의 반대가 항명으로 받아들여지는 군대 내부 사정을 감안할 때에 과도한 징계라는 비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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