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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사상자 유가족연대  자유게시판 - Free Board


ㆍ작성자

정의승리

ㆍ작성일

2016-10-31 (월) 00:16
ㆍ조회: 1676       
故서문석 예비역 상등병 사건 22주년 기리고 애도하며...

양주 군부대 총기 난사사건(楊州軍部隊銃器亂射事件)이란 1994년 10월 31일에 당시 경기도 양주군에 위치한 부대 구내 영점 사격장에서 사격 교육을 받던 서문석 일병(당시 21세)이 자신의 K2 자동소총을 난사하여 소속 중대장과 소대장 등 장교 2명을 살해하고 타 소대장에게 중상해를 입힌 후 자신은 총기 자살을 한 사건이다.
사고 당일 오후 1시에 자신의 소속중대에서 사격 조원으로 편성되어 연병장 북단에 위치한 50m 영점사격장 집결하여 2시 25분경까지 예비 훈련받은 서 일등병은 자신의 차례가 되면서 실탄 10발이 든 탄창 2개를 지급받은 후 동료들과 함께 사선에 들어가 사격 대기를 하였다. 사격 개시를 알리는 구령이 떨어지자 마자 범인 서 일병은 실탄이 장전된 자신의 K2소총을 들고 모두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고 이를 저지하던 사격 통제관 중위총기사살하고 또 다른 소대장에게 중상해를 입혔다. 그 뒤 사고를 알아채고 뒤따라온 중대장까지도 격발사살한 서 일병은 동료들에게도 총기를 겨누던 과정 이를 저지당하자, 다른 동료의 을 들고 자신의 머리를 쏴 자살했다.
'*소대장(小隊長)길들이기'라는 이름의 군 병영내 하극상으로 발생된 무장탈영 사건군기 문란 사태가 계속 벌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다시 한 차례 군 기강 문란으로 인한 사고라는 오점을 남겨 한동안 많은 비난이 불가피하였다. 이 사건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범인 서 일등병이 평소 염세주의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생활하였던 것으로 밝혀졌고, 종종 동료에게 탈영을 제의한 사실까지 밝혀짐에 따라 범인 서 일병의 비정상적인 행태에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점이 안타까움으로 남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관심장병의 관리 문제가 도마에 오르기도 하였다.
 
*소대장(小隊長)길들이기:1994년 9월 27일, 02:30a.m. 53사단 예하()연대 해안4대대에서 김특중 소위(육사60기), 주한섭 소위(학군32기)등 2명과 황정희 하사가 M16A1소총과 수류탄 6발, 실탄100여발을 휴대하고, 근무지를 무장탈영 하였다. 해당 사단은 물론 11군단 예하 전 부대가 무장탈영 간부를 체포하기 이하여 작전을 전개하였다. 27일 당일, 오후에 소위 2명이 투항하고 30일 오후에 황 하사가 검거됨으로서 전반상황은 종료되었는데, 무장탈영 세부이유 관련 큰 파란을 일으켰다.
일반병들이 소대장실에서 도박을 하고 소대장을 폭행했으며 근무지를 무단이탈하여 술을 사와 내무반에서 마시는가 하면, 후임병들에게 소대장, 선임하사에게 반말을 건네도록 지시하는등 군 병영내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기강상 문란,일탈행위를 겪고 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직속 소대장들은 이런 세부실상을 중대장,대대장등 상급부대 지휘관들에게 보고를 하였으나 보고를 받은 중,대대장은 물론 그 누구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묵인,방치하거나 미온적으로 처리하였다. 참다못한 소위2명과 황 하사는 정상방법으로는 조치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이러한 풍조를 사회에 폭로해서라도 문제를 제기하고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각오로 무장탈영이라는 극단방법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사건 조사가 끝나고 10월 13일 진행된 11군단 보통군사법원 1심재판이 열렸다. 여기에서 무장탈영한 2명 소위는 징역 10년刑, H하사는 징역15년刑 선고되었으며 소대장을 폭행한 S병장은 15년刑을 선고받았다.
그 외 가담 병사와 관련 간부 등 32명이 구속되어 21명에게 실형이 구형되었다. 그리고 지휘상 책임 있는 중대장 2명이 징역3년刑,대대장, 연대장, 사단장은 보직해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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